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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謹啓.

 

 

 

   前 風柱, 스승께 서간 올립니다.

 

   어느새 해가 길어지고 바람이 여름을 머금었습니다. 몸을 추스른 지는 꽤 되었으나 겨우 글 쓸 형편이 되어, 잘 지내고 계시는지 이제야 여쭙습니다. 스승님께서 말 덧붙이는 걸 좋아하시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용건만 전달토록 하겠습니다.

 

   소식은 우부야시키 家 당주님께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과거서부터 스승님과 사형께서 예(禮)를 가르쳐주시며 중한 일은 꼭 이르라 당부하셨지요. 부모가 없는 제게 스승님은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여 외람되이 부탁드립니다.

   하지 사흘 전날, 동생과 혼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스승님을 부모로서 식에 모시고 싶습니다. 스승님을 모셔올 고용인들을 댁으로 보냈습니다. 식은 간결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흔하지 않은 식이니만큼 불편하시다면 거절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부디 임의로이 결정 부탁드립니다.

不死川実美.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꼭 안 와도 돼. 그래도 여유 되면 들렀다 가라고 말해주는 거다."

 

 

 

   겐야 친구였으니까.

 

 

 

   주(柱)가 되기 전, 약혼자를 잃고 방황하던 동료가 머리 한쪽을 스친다. 기억하기로는 이마저 놓아줄 수 없다며 모든 걸 포기하고 귀살대를 나가버렸지, 아마. 죽은 연인과 혼인을 올리겠다면서. 그가 방황하던 길의 끝은, 영혼결혼식이었다.

   죽은 사람과의 결혼식.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신도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영혼이 남아있다니. 모든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 물론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절실한 심정은 알 수 있었다. 이 집단은 그런 인간들만 모여있는 곳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잃은 이들에겐 그것만이 유일한 도피처였겠지. 하지만 멍청하고 아둔한 짓임에는 변함이 없다. 죽은 사람은 놓아주어야 맞고 산 사람을 사는 것이 맞다.

 

   아니. 살아가야만 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부르다시피 했다. 스승님께만 알렸고, 무엇보다 오시지 않을 것 같으니까."

   "조금 조심스럽지만, 시나즈가와씨는 사랑해서 식을 올리시는 건가요. 아니면 미련이 남아서 그러시는 건가요?"

   "……글쎄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 짓을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있다니. 적흑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눈이 올곧게 빛났다. 맹목적인 행동으로 아둔해졌던 머리가 일순간 맑아졌다. 모든 상념을 관통하는 질문에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뒤늦게 겐야의 그림자를 쫓으며 남은 감상은 오로지 하나였다. 인생이 초로와 같구나.

   나는 왜, 밀어내기밖에 못했을까. 품어주지는 못할망정 무엇이 급하다고 그리 쳐내기 바빴을까. 하나 남은 동생이 홀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날이 되기까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놓아주려 모아온 흔적에 외려 우매해지는 노릇이라니. 가장 꺼리던 짓을 스스로 찾아 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혼인이란 본래 살아있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행위가 아니던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명쾌한 답도 내지 못한 채 동생의 발을 묶어두려 발버둥 치는 꼴이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새로이 깨달은 것 하나. 인간은 의외로, 기억으로 연명하는 동물이다. 아픈 기억은 마음에 흉을 내어 다시금 인간을 강인하게 만들며 행복한 기억은 우울로부터 발목을 잡아챈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지언정 벼랑 끝까지 몰린 삶을 구원할 힘이 있다는 뜻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도한 적이 있다. 처음 경험한 죽음은 아버지였다. 가족에게 도움은 하나 되지 않고, 망나니짓만 하다가 칼에 찔려 객사한 아버지. 처음 겪은 죽음이 추억할 것도 좇을 것도 없는 죽음이었기에 이별이란 건 다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 친우, 몇 없는 제자.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겪었다. 죽음에 무던해질 정도로 모두가 제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제 곁에 있으면 모두가 떠난다는 가정을 세우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슬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순간의 감정에 얽매여 산다는 건 참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떠난 이는 놓아주고 제 삶을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다만 한 명 한 명 잃어갈수록 점차 확고해진 소신이 있다면― 하나 남은 동생만큼은 제 곁을 스치지 않고 살아가길. 부디, 겐야만큼은.

   그러니 동생조차 제 곁을 스쳐 지나가자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시에 벼랑 끝에 내몰린 형의 발목을 붙잡아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어린 동생이었다. 앞으로'도'  함께라며 기세등등한 작은 동생. 나를 스러지게 한 것도 겐야, 흉진 마음을 꿰매준 것도 모두, 겐야인 셈이다. 하여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시작한 일은 동생의 흔적을 쫓는 것이었다. 남긴 것 하나 없는 동생 덕에 모든 건 동생을 스쳐 간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겐야를 기억하는 이들이 비교적 많이 생존한 것이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정작 고집스러운 동생은 흔적조차 남겨주지 않고 사라졌는데 말이다.

   소년을 만난 이유도 별 다를 바 없었다. 동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년이 건넨 주머니에는 송곳니가 들어있었다. 일반인의 송곳니라기에는 좀 더 큰, 경험상, 혈귀에 가까운 송곳니. 동생이 아무 곳에나 뽑아서 던진 걸 보관하고 있었더라나 뭐라나. 이걸 왜 보관해놨지? 기분 나쁜 놈이네, 너…. 조용히 읊조린 말에 소년이 맑게 웃었다.

 

 

   겐야도 그런 반응이었어요.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어도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저랑 제 동생도 몇 년을 다른 모습으로 지냈지만 말하는 건 똑같거든요.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생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상한 곳에 뜬금없이 송곳니나 흘려 놓고 말이야, 다 사라진 주제에.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기억과 함께 형체를 만들어낸다. 송곳니 이전에 하나 남은 동생의 흔적은 어처구니없게도, 총이었다. 재능 없는 동생이 곧 죽어도 저를 따라오겠다며 선택한 것. 동생의 차선책.

  물건의 가치는 인간 존재의 유무로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총은 그의 일부처럼 여겨졌음이 분명했다. 그리 생각하니 과거에 꼴도 보기 싫었던 것은 어느새 동생의 흔적이 되어, 버려지기는커녕 침구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곧 총처럼 조촐한 형체가 되겠지. 방금 건네받은, 손안의 작은 뼛조각이 거슬렸다.

  자잘한 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것이 바로 미련이다. 그동안 동생의 흔적을 쫓으며 끊임없이 과거를 되뇌었다. 되뇌면 되뇔수록 흔적이 겹치고, 모진 저 자신이 겹치고, 미련이 겹친다. 혼인을 올리고자 마음먹은 건 겐야의 유품으로 총을 건네받았을 때였다. 겐야와 함께 모질게 다뤄져 다 부서져 가는 고물. 마지막까지 동생과 함께했던 물건.

  떠나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물건을 받고, 동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고. 무작정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젠 왜 죽은 동생과 혼인을 올리려 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시작을 잊을 정도로 목표가 불분명했던 거겠지.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속죄의 의미를 담아 시작했던가. 혹은 단순 미련 때문이던가.

 

 

 

   "겐야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러시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왜지?"

   "그도 그럴 것이, 시나즈가와씨만 쫓아왔으니까요."

 

 

   겐야는 형 근처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어요. 무엇보다 그건,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 확고한 마음이었으니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게, 너를 사랑했기에. 너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가. 그 답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너를 위한 일인지, 나를 위한 일이었는지.

 

 

 

 

 

 

 

 

 

 

 

 

   不死川実美,

 

    

   너희를 자식처럼 대한 것을 알아주어 기쁘구나. 하나 그래서 더 갈 수 없을 성싶다.

 

   물론 동생의 죽음은 정신을 놓을 정도로 충격적이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너는 동생만을 위해 살아온 아이이니 네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너를 봐온 사람으로서,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가 혼인을 이어 가겠다면 별말 얹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잘 생각해보렴. 무엇이 너를 위한 일인지, 겐야를 위한 일인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이승에 발 묶이는 것을 원하는 거니? 죽은 사람은 놓아주는 것이 옳고 산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맞단다, 애야.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임의로운 결정은 네가 해야 할 것 같구나. 모쪼록 몸과 마음 잘 추스르길 바란다. 나중에 보자꾸나.

 

 

 

 

 

 

 

 

 

 

 

 

   까마득하기만 했던 결혼식은 성큼 다가온다. 모든 것이 예상과 한치 다름이 없다. 올 이는 일찍이 인사를 마치고, 오지 않을 이는 오지 않았다. 식은 올리지도 않았다.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을 본 것이다. 상에 올려져 있는 총과 송곳니가 단출하다. 이게 예식에 올리는 상인지, 제사상인지. 널브러진 상을 정리할 힘조차 나지 않는다. 당사자가 없는 식이라는 건 정말이지 허망한 거구나.

 

   다시금 돌이켜본다. 나는 정말로, 너를 위해, 너에게만 충실하여 이 허례허식을 시작했던 것인가. 아니면 나의 미련이, 혹은 나의 사랑이 너의 발목을 붙잡고, 너를 이 허무로 끌고 들어온 것인가.

   스승님의 말씀이 옳다. 모든 것은 덧없다. 그 아무도, 어쩌면 너도.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 원치 않는 판을 벌여두고 상념에 잠긴 게 바보 같았다. 모든 건 현실이 되고 나면 더 아프다는 걸 이미 몸이 부서져라 깨달은 주제에, 뻔히 정해진 결과를 껴안고 내던지질 못했다. 속이 쓰리다. 목화가 물을 머금은 것처럼 무겁다. 인간이라는 게 참 어리석지. 그런데 머릿속은 한없이 맑아져 이상하게도 후련하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무슨 마음인지.

 

 

   형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겐야, 바람이 여름을 머금었어. 그래도 새벽녘 바람은 아직 차다. 네가 타고 오는 바람이라 그런가 봐.

 

   새벽에 태어난 아이는 새벽에 떠난다더니. 우리가 그 새벽만 넘겼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네가 오고 간 그 시간만 무사히 넘겼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함께할 수 있었을지 몰라. 의미 없는 혼인식으로 너를 붙잡아 둘 일도, 놓아줄 일도 없었겠지. 생전에 네가 잠조차 편히 자지 못한다는 기별을 받은 적 있다. 간솔히 말하자면 당시엔 그럴 바엔 하루빨리 나가버려, 라고 생각했어. 이대로 가다간 네 평생이 망가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 당연히 식으로 생사를 오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도 네 평생의 목표가 나를 지키는 거였다면 …잘 해낸 거겠지만.

 

   여태 실없는 사랑에 기대어 너를 놓아주지 못했어. 갈 곳 잃은 감정이 미련인지 사랑인지도 모를 채로, 너를 이승에 묶어두려 했다. 괜한 짓이지. 네 앞으로 보내는 서편도 이게 마지막일 거다.

 

   형은 이제 널 놓아줄 거야.

 

   사실 놓아준다는 게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배고프지도 않고 원한다면 잠도 실컷 잘 수 있는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너를 불러올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너, 자는 거 좋아하잖아.

  뒤늦게 하는 말이지만, 형아는 네가 웃는 낯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설령 그때 내가 네 곁에 없더라도 끝까지 살아주었으면 했어. 떠나기 전에 네가 분명 너도 나와 같은 심정인 거라고 했지? 우린 형제니까. 그러니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줘. 네가 지켜준 목숨이 다하면 그때 꼭 찾아갈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도, 겐야.

 

 

 

 

   謹啓,

   내 동생,

 

 

 

 

 

                                                                      謹啓,

 

 

                                 겐야,

 

 

 

 

 

                              謹啓.

                                                                                           겐야. 

 

 

 

 

 

 

 

 

 

 

사랑해.

   네가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謹啓(삼가 아뢰는 말),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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