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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사소했다. 여느 때와 같은 회식 자리,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온 한 마디.

 

 

 

    “야, 근데 너네 대체 언제부터 사귄 거냐?”

 

 

 

  하지만 어느 누가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했던가.

 

 

 

    “4월 27일.”

 

    “작년 4월 10일이요.”

 

 

 

  그리고 잠깐의 정적.

 

 

 

    “뭐?”

 

    “뭐라고요? 선배 미쳤어요? 4월 27일은 어떤 새,”

 

 

 

  아아, 두 사람의 답은 갈리고야 말았다. 이건 누구의 잘못일 것인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자칭, 타칭 어엿한 경찰서 대표 꼴값 신혼부부인 이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는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기로 하자.

 

 

 

 

 

    사건의 전말

    w.양말

 

 

 

 

 

  Case 1. 겐야

 

  발단은 4월 9일. 부서 회식 날이었다. 오늘은 불금이고 회식 메뉴는 웬일인진 몰라도 소고기였다. 그리고 날도 좋았고, 하여튼 모두의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술도 술술 들어갈 수밖에. 분위기에 취해, 날씨에 취해 마시다 보니 소주병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점점 개가 되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다. 점점 쓰러져가는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네히로와 겐야는 기분에 들떠 줄지 않는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결국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의 술병이 두 손을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쌓였을 때쯤 1차를 마치는 분위기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향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처마셨음에도 무언가 조금 부족했다. 오직 그뿐이었다. 딱, 맥주 한 캔만 더.

 

  그렇게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목소리를 높여 웃으며 곧장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봉투 한가득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서 당연한 듯 사네히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에도 이렇게 사네히로의 집으로 2차를 갔던 적이 꽤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익숙했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이들에게는 항상 있던 일이었다. 집에 도착한 겐야는 자연스럽게 사네히로의 옷장에서 이제는 제 것같이 편한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사네히로도 아무렇지 않게 그 옆에 서서 옷을 갈아입던 겐야의 엉덩이를 주물거렸다.

 

 

 

    “겐야아, 오늘도 귀여운 엉덩이네에―”

 

    “선배 진짜 성희롱으로 신고할 거예요.”

 

    “아야, 선배를 때리는 후배가 어디 있냐―”

 

    “여기요.”

 

 

 

  옷을 갈아입으며 늘상 하는 시시콜콜한 만담은 덤. 하여튼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맥주를 깠다. 그리고 까고, 까고, 계속 깠다. 끊임없이 깠다. 거기까지도 나름 괜찮았다. 그때의 겐야는 이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인간이었다. 그래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속마음을 애써 맥주와 함께 꿀떡 삼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사네히로의 집에 먹다가 남은 양주가 있었다는 점. 1차에서 소주, 2차에서 맥주, 그리고 3차는 양주, 그에 겸해서 양맥까지. 그걸 까던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럼, 된 걸까?

 

  양주병이 거의 비어갈 즈음, 겐야는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가릴 것 없이 달아올랐고 맞은 편의 사네히로는 멀쩡해 보이긴 했다, 낯짝만은. 그리고 점점 빨개지던 겐야를 1열에서 직관하던 사네히로의 몹쓸 호기심이 결국 터져 나왔다.

 

 

 

    “겐야아―”

 

    “왜여?”

 

    “너 원래 몸이 다 빨갛냐? 방울토마토 같아, 귀엽다.”

 

    “무슨 소리야, 진짜. 짜증나게에,”

 

    “아니, 귀엽잖아. 확인 좀 해보자, 다 빨간지.”

 

 

 

  그래. 이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사네히로는 싫다고 질색을 하는 겐야의 옷을 벗기려 들었고 겐야는 안간힘을 써서 벗겨지지 않으려고 했다. 한참을 몸을 겹치고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사람은 별안간 눈이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입술을 부볐다. 이때도 사네히로는 멀쩡해 보였다, 물론 낯짝만은.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 겐야는 술을 마시면 얼굴은 터질 듯 빨개지지만 다음날에도 술자리의 모든 일을 다 기억하는 타입, 그래서 항상 숙취와 전날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류라면 사네히로는 계속 말했다시피 얼굴색은 멀쩡해 보여도 특정 선을 넘으면 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타입이다. 그 특정 선이 하도 높아서 다들 사네히로가 술을 아무리 마셔도 필름이 끊기는 타입이 아닌 줄 알지만 사실은 그랬다. 그걸 그 아무도, 심지어 30여 년을 살아가며, 그중 술을 마신 기간은 10년이 훨씬 넘어가고 반올림하면 20년에 가까워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본인조차 몰랐다는 게 아주 큰 문제였지만.

 

  어쨌든, 일을 모두 치른 후 작은 침대에 좁지도, 덥지도 않은지 딱 달라붙어 나란히 누운 두 사람. 겐야는 지금 일어난 모든 것을 확실히 해야겠다고 굳게 생각했다. 입사 때부터 짝사랑해온 선배를 놓칠 순 없었다. 입사하자마자 사실은 얼굴에 반했음에도 혼자만의 입덕 부정기를 거쳐 결국엔 짝사랑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약 1년. 그리고 마음을 숨겨온 지 어언 2년. 그렇게 겐야가 통합 3년을 기다리고 오늘에서야 겨우 쟁취(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해낸 사네히로였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조차 다 막아야 했다.

 

 

 

    “선배, 그래서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거야?”

 

    “엉? 어엉― 근데 겐야아, 한 번만 더 하자.”

 

    “미쳤어요? 허리 아프다고, 제발 좀…. 선배, 앗, 아앙♡”

 

 

 

  …이제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 날 점심, 이라기도 뭐한 오후 3시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시간은 벌써 3시라는 노래 가사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느적느적 눈을 뜬 겐야는 어제의 기억과 밀려오는 숙취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악, 씨발 내가 왜 그랬지. 술김에 섹스하고 사귀는 거 진짜 쓰레기 아니야? 물론 그렇게 따지면 선배가 더 쓰레기긴 하지만…. 아, 생각하니까 빡치네? 왜 갑자기 내 옷을 벗겨? 여기까지 떠올린 겐야는 손을 들어서 냅다 사네히로의 벌거벗은 등짝을 내리쳤다. 겐야는 때리고 나서야 제 손톱자국으로 가득한 사네히로의 등짝을 눈치채고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꼈다. 그래도 뻔뻔하게 사네히로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야―”

 

    “선배, 지금 잠이 와요?”

 

    “어엉, 잘 오는디….”

 

    “하아….”

 

 

 

  왜인지 천하 태평한 사네히로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다시 눈을 감았다. 겐야는 그런 사네히로의 등짝을 다시 한번 내리치며 냅다 외쳤다. 이번엔 진짜 자업자득이 맞다.

 

 

 

    “야 이 씨발놈아, 니 때문에 허리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겠다고!!!”

 

 

 

  그 말을 들은 사네히로는 벌떡 일어나 겐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쪽팔려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씨익 대는 겐야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본인이 잘못한 걸 깨달은 건지 어떤진 몰라도 두툼한 손으로 허리를 주물러도 주고 겐야가 가져다 달라는 건 다 가져다주었다. 겐야는 당연히, 사네히로가 그 잠깐 사이에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해내고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 그랬겠지, 아무래도. 3년째 같이 지내면서 아무리 사네히로를 속속들이 아는 겐야라도 사네히로가 지금 전날의 기억을 잃은 채 그냥 겐야가 그렇다니까 곧이곧대로 자기가 잘못했겠거니 넘겨짚고 허리 마사지도 해주고 심부름도 다 해준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자, 여기까지가 겐야가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두 사람의 사이에 딱히 별다른 것이 없었던 것은 이들이 원래도 부부같이 지냈기 때문일까.

 

 

 

  Case 2. 사네히로

 

  그리고 사네히로, 그가 기억하는 사건은 짧다. 웬일로 소고기 회식을 하고 2차로 귀여운 후배랑 같이 집에 와서 기분 좋게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들었는지 후배에게 등짝을 맞고 눈을 떴다. 그러니 옆에서 귀여운 후배가 귀여운 뼛성을 내며 이것저것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다 들어줘야지, 귀여우니까. 그날 이후로도 전과 같이 후배 좀 괴롭히고, 놀아주고. 그런데 전에도 농담처럼 던지던 뽀뽀해달라는 말에 처음으로 겐야가 얼굴을 붉히며 먼저 볼에 입을 맞춰준 날 궁금해진 점. 우리가, 사귀고 있던가? 고백을… 했던가? 사네히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지만 겐야가 그럴까 싶어 입을 연다.

 

 

 

    “겐야아,”

 

    “네?”

 

    “좋아한다.”

 

    “…? 네, 저도요.”

 

 

 

  그래, 이 정도면 고백이겠지, 그럼 우리의 기념일은 오늘이다. 이거 기억해뒀다가 챙겨주면, 겐야 녀석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리는 거 아냐?

 

 

 

 

 

*

 

 

 

 

 

  그리고 오늘도 회식을 마치고 두 사람의 집으로 가는 길. 덩치 큰 남정네 둘이 덥지도 않은지 손을 꼭 맞잡고 걷던 중 겐야가 막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선배, 근데 진짜 그날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어엉….”

    “하아…. 나 선배한테 완전 속았네. 당연히 나 좋아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하나도 기억 못 하고. 그럼 나랑 왜,”

    “뭐, 나도 너 입사 했을 때부터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속은 건 아니지.”

 

 

 

  그 말을 듣고 굳어버린 겐야를 두고 사네히로는 혼자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들려오는 귀여운 후배의 진짜 속았다고, 그걸 왜 말 안 했냐며 쫑알대는 귀여운 목소리는 사네히로만의 포상. 그렇다면 사네히로도 그에 보답해주어야겠지.

 

 

 

    “겐야아, 집 가서 느긋하게 한 잔 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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