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케의 행방
쨍그랑. 정오를 15분 남기고 낡은 현관종이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을 코앞에 둔 이 시간에 시민이 방문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공무원은 없을 테지만, 겐야는 씩씩하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깨에 힘 좀 빼라, 후배.” 선배 중 누군가가 킬킬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무슨 일로 방문하셨……?”
사네히로가 후배의 반응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점을 눈치챈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필 이 애매한 시간에 경찰서에 들어온 사람의 정체는 젊은 남녀 한 쌍이었다. 전신을 새카만 옷으로 감싼 남자에게서는 옅게 튀김 냄새가 났다. 한편 동행한 여성 쪽은 남자보다 키가 조금 더 컸으며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 법한 화려한 미인이었다.
후배는 응대도 잊은 채 얼빠진 얼굴로 내방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
하지만 내방객들의 태도 역시 평소 그가 보아왔던 태도와는 조금 달랐다. 여성 쪽은 경악한 얼굴로, 남성 쪽은 뚫어져라 후배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저 녀석. 아는 사람인가? 그 기묘한 대치 상태를 끊은 것은 직속 선배인 사네히로의 몫이었다. 불성실한 응대를 할 마음은 없었지만, 역시 점심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이 녀석은 신입이라서…….
안쪽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방문 목적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 선배.”
“멀뚱히 서서 뭐하고 있어? 아는 사람이야? 자꾸 어리버리하게 있다간 민원 들어온다.”
툭. 시나즈가와 사네히로가 작게 속삭이며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다. 그 가벼운 자극에 후배 겐야가 곧장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잠시 한눈을 팔았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외치는 후배의 표정은 아직도 어딘가 넋이 나간 채였다.
* * *
아직도 다소 정신이 없어보이는 여성 쪽과 달리, 남성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는 느릿느릿하게 “이구로 오바나이입니다. 한 달 전 서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덮밥집을 개업해 지금까지 운영 중입니다. 함께 온 이 분의 이름은 칸로지 미츠리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입니다. 다음 주에 식을 치를 예정이고요. 오늘은 신고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라며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사네히로는 후배가 중간중간 “거짓말.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고요?”. “결혼? 우와아…….” 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다음 주에 식을 치를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정말 축하드려요!” 라고 외쳐버리기까지 해서,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후배에게로 집중되고 말았다.
후배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얼빠진 태도였지만 내방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급기야 칸로지 미츠리라는 여성은 작게 웃으며 핸드백에서 청첩장을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
“정말이야! 나도 겐야 군이 이렇게 가까운 데에서 근무하는 경찰 씨가 되었을 줄은 몰랐네. 축하해줘서 고마워. 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다니……. 웃, 우웃…….”
방금 그 이야기의 어디가 눈물샘을 자극하는지 사네히로로서는 알 수 없었다. 칸로지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급기야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후배는 코끝이 시큰해졌는지 코를 훌쩍거렸고, 이구로는 칸로지의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였다. 분위기에서 소외된 사람은 오직 사네히로 뿐이었다. 아, 서로 아는 사이인 모양이구나. 그런 애매한 깨달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미안해요.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서…….”
“아니요. 저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구로의 차분한 목소리에 칸로지와 후배가 앗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느새 후배가 아닌 사네히로를 바라보며(빠른 판단력이었다) 서류가방에서 서류봉투를 하나 꺼냈다.
서류봉투 안에 들어있는 건 네 장의 사진들과 한 장의 편지였다. 이구로는 사네히로의 업무용 테이블 위에 사진을 한 장 한 장 늘어놓았다. 사네히로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사진의 배경은 주로 덮밥집 앞의 풍경이었다. 오물이 투척되어 있거나 페인트로 바닥에 낙서가 되어 있는 모습 등이 각자 다른 날 여러 번 반복되어 있었다.
“전부 근 일주일 안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동네 아이들이 질 나쁜 장난을 했나 싶어 사진만 몇 장 찍어놓고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장난’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이 늘어나더군요. 그러더니 오늘, 이런 편지와 함께 사진이.”
마지막 사진만은 여태까지의 사진과 풍경이 달랐다. 이구로로 추정되는 남성과 칸로지의 모습이 사진 속에 찍혀 있었다. 멀리에서 찍은 사진인지 둘의 모습은 흐리게 나와 있었고,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이구로가 아닌 ‘이구로로 추정되는 남성’의 사진이라 판단한 근거는 간단했다. 이구로의 얼굴이 나온 부분만이 볼펜이나 커터날 등으로 엉망으로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왔다는 편지 또한 가관이었다. 편지는 손글씨가 아닌 A4 용지에 잡지나 신문의 글자를 오려붙여 만든 조악한 형태였는데, 하나같이 저열한 문구만이 가득해 이구로를 향한 지독할 정도의 악의가 느껴졌다.
“동봉된 편지를 확인하려고 편지 봉투를 열었을 때 커터날이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손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사진도 그렇고 편지의 내용물도 그렇고 더는 농담으로 넘어갈 수가 없겠더군요. 저야 그렇다 쳐도 칸로지를 불안하게 한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범인을 잡아 신고하고 싶은데, 협조를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이 ‘괜찮겠습니까’지 이구로 오바나이의 시선은 대단히 흉흉했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뿐 단단히 화가 난 낌새였다. 그때 상황을 듣고 있던 후배 겐야가 테이블을 탕 쳤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벌개진 게, 이 소식에 크게 화가 난 눈치였다.
“당연하죠! 이구로 씨도 칸로지 씨도 아무 일도 없도록 협조하겠습니다. 그게 경찰의 일이니까요!”
이 녀석, 이런 캐릭터였던가? 오늘따라 신선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후배의 모습에 사네히로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에게 후배의 태도는 꽤 위안이 된 모양이었다. 이구로는 옅게 웃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아는 사람들이었어?”
“아, 네. 예전에 잠시……. 점심은 맛있게 드셨어요, 선배?”
“먹으면서 말해.”
“우왓,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으셔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점심시간을 틈타 내방객 둘과 라인id를 교환하고 한참 떠들고 오느라 쫄쫄 굶은 후배가 식어빠진 만두를 받아들고 쑥스럽게 웃었다.
그의 직속 후배인 겐야는 올해 갓 채용된 서의 막내였다. 인근 불량학생들도 시선을 피할 정도로 강경해 보이는 용모와 달리 서 내에서 나름대로 귀여움을 받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사네히로로 말하자면, 그는 이 후배를 ‘귀여워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에 속했다. 서의 사람들은 사네히로가 겐야가 발령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서의 막내를 맡고 있었던 만큼 후배가 생겨 즐거운 모양이라고들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때로 편견은 많은 것을 진실로부터 지켜준다. 사네히로는 짧게 혀를 찼다.
“범인은 아무래도 새벽에 나타나는 것 같으니까요. 당분간 새벽에 잠복하면서 근처를 자주 순찰해보려고 해요. 이구로 씨도 사흘 뒤부터는 결혼 준비로 길게 휴업을 하신다고 했으니 그 동안만이라도요.”
애석한 일이지만 이구로의 가게 앞에는 cctv가 존재하지 않았다. 개업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가게고 동네 장사인지라 가게 앞에 cctv가 필요할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듯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 기계를 주문하긴 했지만 배송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나 뭐라나. 범인이 이대로 잠잠해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인력의 동원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몇 시부터?”
“예? 그, 일단은 네 시 정도부터 아침 출근 시간 전까지 버텨볼 생각인데요.”
“초여름이어도 새벽은 의외로 쌀쌀하니까 가디건 정도는 챙기고 나와.”
“선배?”
“뭐, 그러면 너 혼자 잠복근무라도 시킬 줄 알았냐? 신입 주제에 건방지게.”
사네히로는 짧게 코웃음 쳤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제가 멋대로 독단적인 말을 해버린 게 문제니까요.”, “주무셔야 하지 않아요?” 후배가 뭐라뭐라 웅얼거렸으나 사네히로는 그대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원래 이런 폭거야말로 선배의 특권인 법이었다.
* * *
그리고 다음날 새벽 네 시. 사네히로와 후배는 검은 렌트카에 탑승한 채 이구로의 가게 앞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사네히로는 귓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후배의 낮은 숨소리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며칠 전 어제 이구로 오바나이라는 남성이 꺼냈던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에 둔 녀석과 이토록 조용한 밀실에 단 둘이 있으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과도하게 생각을 돌리려고 노력하다보니 오히려 어제 내방객들을 보며 과하게 기뻐하던 후배의 모습이나, 이구로라는 청년과 함께 왔던 여성이 어지간한 남자는 첫눈에 호감을 가질 법한 미인이었다는 점 따위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고 말 지경이었다. 스스로의 한심함에 실소가 나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네히로는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을 보는 순간 속이 기묘하게 울렁거렸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이 갔다. 고지식한 점도, 성실한 점도, 유독 그를 잘 따른다는 점도, 의외로 아이들을 잘 놀아준다는 점도. 모든 점이 좋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무언가를 그만 둘 시점조차 놓친 뒤였다.
편견은 때로 많은 것을 가려준다. 사네히로가 유독 후배 겐야에게 친절해진다던가 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곤란한 민원인에게 시달리고 있으면 구해주고, 식사를 제대로 했는지 사사건건 신경 쓰고, 하다못해 새벽 4시에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잠복근무에 자발적으로 끼어든다 해도 서 내의 사람들은 그저 ‘친절한 선배가 다 됐구나, 사네히로!’ 정도로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배 녀석만큼은……. 아니, 전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쓸데없고말고. 이번에야말로 잡념을 몰아내기 위해 사네히로는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성실한 건 좋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일해서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걸. 예전에 그 사람들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체적인 인명 피해나 재산상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은 이상 이런 일은 순찰을 늘리는 정도로 처리되곤 했다. 형사도 아닌 말단 경찰이 지금처럼 새벽부터 잠복근무를 하며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은 좀처럼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인의 일이라 힘이 들어간 모양이지만,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간 정말 몸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후배는 뜻밖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뭐랄까……. 저, 그 분들은 더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하하, 이상하게 들리죠. 하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고 하시니까…….”
후배가 짧게 말을 멈췄다. 사네히로는 자신도 모르게 후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후배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고, 또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한 묘한 얼굴. 시나즈가와 사네히로는 문득 떠올렸다. 이 표정은 그가 후배와 처음 만났을 때 후배가 지었던 표정과 같았다.
후배는 몇 번이고 말을 고르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했다. 사네히로는 후배가 이 이상의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후배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슬리는 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더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가만있을 수 없다. 묘한 표현이었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날은 범인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 *
감정에 취해 한심한 소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선배의 눈에는 그냥 후배가 과잉 근무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텐데. 겐야는 조금 후회했다. 부족한 수면 때문에 눈알이 따끔거렸다.
선배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겐야와 그들은 초면이었다. 친분은커녕 살아있는지 여부도 알지 못했던 생판 남.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서로에게 목숨도 맡길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가 깔려있기도 했다.
겐야(이제 시나즈가와는 아니다)에게는 전생의 기억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은 무섭도록 생생했다. 어렸을 무렵에는 자신이 이상한 혈귀술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건 혈귀술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남자아이로 다시 태어났고, 여태까지 평탄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혈귀가 없다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일찌감치 최후를 맞았고, 그 이후의 일은 전혀 몰랐다.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만에 하나 혈귀가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한다면 그들과 맞서는 건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고, 고등학교에 졸업하자마자 채용 시험을 쳤다. 그리고 첫 발령지에서…….
선배, 시나즈가와 사네히로를 만났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 사네미와 똑 닮은 청년이었다. 이름마저 비슷했다.
그리고 몇 번의 대화 끝에 자연스레 짐작하게 되었다. 선배는 아마도 형의 후손인 모양이었다. 살아남았구나, 형. 그 싸움에서 살아남았던 거구나. 혈귀들도 무사히 물리쳤구나. 인생의 모든 것을 보상 받은 듯한 환희와 격렬한 그리움에 그날 밤은 잠조차 자지 못했을 정도였다.
겐야는 사네히로를 단박에 좋아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존재만으로 겐야를 구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닮아도 사네히로는 사네미가 아니었고, 사네미를 다시 만날 일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연주 칸로지 미츠리와 사주 이구로 오바나이와의 재회는 겐야에게 있어 충격과도 같았다. 그 말고도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형도 이 세상 어딘가에 다시 태어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정말로 어쩌면, 사네히로 선배가…….
‘아니지, 정신 차리자.’
모든 것은 추측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겐야가 따로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겐야는 고개를 두어 번 붕붕 젓고는 다시 일로 정신을 집중했다.
* * *
범인은 그 후 이틀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흘째 새벽. 그들은 여전히 덮밥집 근처 골목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경찰차보다 정겹기까지 한 렌트카와 함께였다. 겐야는 하품을 하며 조수석 차 유리에 기댔다. 오늘부터는 이구로의 덮밥집도 일시 휴점에 들어갈 것이다. 범인이 꼬리를 말고 영영 사라진 거라면 좋을 텐데.
운전석의 사네히로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겐야는 고개를 들어 가방 안에서 아직 따듯한 채인 차를 꺼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들고 왔는데 마침 운이 좋았다.
“드세요, 선배.”
“어. 고맙다. 너는?”
“저는 아직 괜찮아요.”
병뚜껑을 따는 경쾌한 소리가 조용한 차 안을 울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을 텐데요.”
“여태까지 한 고생이 헛수고가 되어도?”
“피해가 더 커지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괜찮찮아요. …어! 아니, 그게, 선배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바보도 아니고, 이상한 오해 같은 거 안 해.”
낮은 웃음소리가 차체에 조용히 깔렸다. 겐야는 문득 자신이 과거의 사네미의 웃음소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사건 이후로 줄곧 떨어져서 자랐고, 다시 만나서는 웃을 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선배에게는 실례인 일일지도 모르나, 어쩌면 형의 웃음소리도 사네히로 선배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한동안 아쉽게 되겠네요. 인근에선 이구로씨의 가게가 제일 맛있었는데요.”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직접 가게에 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이구로의 덮밥집을 꽤 이용해본 적이 있었다. 최근 동료 선배들이 점심 메뉴로 배달 주문을 넣곤 했던 덮밥집이 바로 이구로의 가게였던 것이다.
이구로의 덮밥집은 예전에 주로 이용하던 덮밥집보다 가격은 살짝 비쌌지만 맛있는데다 양이 많았기에 서에서 큰 호평을 사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낙이 하나 줄어드는 것은 분명히 애석한 일이었다.
“그렇지. 음…….”
‘이전에 이용하던 가게보다 맛있다’라.
무언가가 턱 걸렸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걸리는 것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애매한 찝찝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졸려서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선배?”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사네히로는 정말로 별 일 아니었다는 양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저 칸로지 씨에게 식장이 이 근처라고 들었어요.”
겐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미 이구로의 가게 앞에는 임시 휴업 공지가 붙어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회에 대한 당혹감과 사안에 대한 분노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결혼이라. 그러고 보니 젊은 나이에 드문 일인데.”
“그렇죠? 저는 좋아 보여요. 일찍 결혼하는 거.”
“…어, 그러냐.”
“선배는 어떠세요?”
떠오르는 것은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다. 네놈은 정말로 구제할 길 없는 동생이구나, 라고, 쓸쓸하게 말하며. 사네미는 겐야가 어딘가에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해지기를’ 바랐다고 말했었다. 아마 일찍 하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긴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네히로는 겐야와 마찬가지로 며칠째 잠이 부족해 뻑뻑한 눈을 문질렀다. 목 상태도 영 좋지 않았고, 평소와 달리 머리가 붕 뜨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잠시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네가 빨리 하는 게 좋으면 빨리 해도 상관 없…….”
“…선배?”
“어.”
잠깐.
내가 지금 뭐라고 했지?
찬물을 머리끝부터 뒤집어쓴 듯한 싸한 감촉이 전신에 좍 퍼졌다. 시나즈가와 사네히로는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려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 앉은 후배가 그야말로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얼이 빠져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선배.”
“아니, 잠시만. 지금 그 말은!”
그때였다. 아직 어두운 새벽의 도로를 낯선 차량 한 대가 가로질렀다. 차는 서서히 속력을 줄이더니 이구로의 덮밥집 앞에 멈춰 섰다. 잠시 차 안에 머물렀던 묘한 기류가 싹 가라앉았다. 두 경찰은 전방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는 게 보였다. 사네히로는 조용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쾅!
덮밥집의 유리문에 제법 커다란 돌덩이가 직격했다! 산산이 깨진 유리조각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이건 두고 볼 것도 없이 현행범이었다! 차는 유리문에 돌덩이를 던지자마자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네히로는 골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번호판 빨리 찍어.”
“찍었어요!”
“젠장할 새끼. 도망가게 둘 줄 알고. 출발할 거니까 벨트 꽉 매.”
“맸어요, 선배. 어서 가죠!”
사네히로는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 지금이야말로 이 기나긴 새벽의 끝을 볼 때였다.
* * *
앞서 가던 차량은 미행이 붙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속력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경찰차도 아니고 확성기도 갖고 있지 않은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앞 차를 따라가기 위해 함께 속도를 한계까지 밟아대는 것뿐이었다.
새벽의 추격전은 그리 길지 않게 끝났다. 차로 도망치는 건 끝이 없다 생각했는지, 범인은 차가 다니기 어려운 강변에 아무렇게나 급정거한 뒤 차를 버리고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덩치가 큰 남자였는데, 문득 겐야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지 기시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사네히로와 겐야는 근처에 차를 대고 범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형사도 아닌데 내가 왜’ 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약이 올랐다!
“거기! 거기 멈추세요! 지금 멈추면 아직은 경범죄거든요! 경찰이다! 멈추라고!”
기어이 한계까지 스트레스를 받은 후배가 꽥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치고는 몹시 씩씩한 태도였다. 그런 후배의 태도에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정말로 범인이 멈췄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두 경찰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 시끄러워. 경찰이 왜 여기 있는 건데!”
남자가 울부짖듯 외치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사용감이 넘치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었다. 사네히로는 눈을 부릅떴다. 흉기의 존재도 큰 위협이었지만, 무엇보다 저 남자, 낯이 익었다!
“뭐야. 근처 덮밥집 사장님이잖아?”
겐야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사네히로는 아까 느낀 찜찜함의 정체를 이제야 깨닫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구로의 덮밥집은 개업과 동시에 성업을 이루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익을 본 사람이 생기면 손해를 보는 사람 역시 나오는 법이었다. 손님이 그쪽으로 많이 몰린 만큼 인근 덮밥집 사장님의 가게는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당장 서에서도 기존 가게보다 이구로의 덮밥집을 자주 찾게 된 상황이었으니 동기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협박 편지와 업장 테러라니? 하는 행동이 너무 저열했다. 나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사장의 가게를 찾은 이력이 있는 사네히로는 거의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장님. 이래서 좋을 거 없어요. 칼 내려놓으시고 일단 서로 갑시다. 아직은 좋게 해결할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성큼, 겐야가 한 발짝 먼저 앞으로 나섰다. 칼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그리고 사네히로는 사장의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명백하게,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우와아아악! 사장이 괴성을 지르며 앞선 겐야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네히로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 모습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몹시 느리게, 그러나 한 순간에 지나갔다.
쇄도하는 칼날, 바닥에 흩뿌려지는 ——의 피,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도, 그는, 시나즈가와 사네미는, 끝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니, 이번에는 달랐다. 절대로 마찬가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너 임마, 남의 동생에게 무슨 짓거리야!”
아. 어떻게 잊고 있었을까.
모든 것이 명료해지고 있었다.
시나즈가와 사네히로는, 시나즈가와 사네미는 동생을 위협하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새벽의 싸움은 서에서 제일 어린 축에 드는 두 경찰에게 영광의 상처를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하필 날붙이가 스친 부위가 얼굴이라 피가 많이 나긴 했으나 둘 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아무리 태평하게 살아왔다 해도 혈귀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에게 당했다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설마 민간인에게 당할 정도가 되었을 줄은 몰랐지만, 고맙다. 너희 둘의 음식 값은 앞으로도 받지 않겠어.”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사네히로가 기억을 되찾았음을 깨닫자마자 이구로가 한 말이었다. 사네히로는 옛 친구가 실로 오랜만에 얄밉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네히로, 사네미는 저 말이 이구로 나름대로의 친근감의 표시임을 이해가고 있었다.
그는 둘에게 축의 따위는 필요 없으니 시간이 나면 오라며 청첩장을 내밀기도 했다. 시간이 촉박하긴 했으나 사네미와 겐야는 간만에 휴가를 쓸 예정이었다.
연행당한 덮밥집의 사장은 ‘몇 년 전 아내와 아이가 나를 떠났다.’, ‘매출도 줄어들고 있다.’, ‘행복해 보이는 녀석을 보니 참을 수가 없어져서…….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기가 죽어 있었는데, 이건 두 사람으로서는 정말로 알 바 아닌 일이었다. 소식을 받고 서에 출두한 이구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 문제는 정말로 법적인 문제로 정리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얼굴에 난 상처 부위는 전생과 몹시 흡사했다. 이 상황이 우스워져 사네미와 겐야는 결국 거즈를 덕지덕지 붙인 얼굴로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웃다가 상처가 터져 간호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건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단 하나,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 * *
이구로와 칸로지의 결혼식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붉은 융단을 가로질러 이구로에게로 향하는 칸로지의 얼굴이 그 어떤 꽃보다도 화사하게 빛났다.
햇살은 밝았고, 바람은 습기 없이 서늘해 딱 좋았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 사네미와 겐야는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 참석해 있었다. 얼굴의 상처가 다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둘의 얼굴은 여전히 붕대와 거즈가 잔뜩 붙은 채였다. 하지만 이 결혼을 보러 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6월에 결혼하는 신부는 행복해진다고 했던가. 하지만 칸로지는 그런 것이 없어도 이미 행복해보였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저 두 사람은 ‘예전’에도 이렇게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결혼식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리고 사네미와 겐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결혼을 일찍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겐야는 조금 뜬금없게 말했다. 그의 말은 계속 두서없이 이어졌다. 도쿄에 근무하고 있지 않냐던가, 파트너십 제도가 생겼다던가, 그런 말들. 시선은 올곧을 만큼 정면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거즈와 붕대로 가려진 상태임에도 얼굴이 토마토보다 빨갛게 익어 있었으니까.
“…형이, 빨리 하는 것도 좋으면…….”
푸핫. 사네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너는 정말 어릴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시끄러워. 그런 투닥거리는 말들이 일상적으로 이어졌다. 사네미는 슬쩍 겐야의 손을 붙잡았다.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여 조금 단단하면서도 따끈따끈한 감촉이 겐야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실감케 했다.
칸로지가 웃으며 부케를 던졌다. 웨딩드레스만큼이나 화사한 부케가 근사한 포물선을 그렸다.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탓인지, 부케는 원래 부케를 받기로 되어 있던 칸로지의 친구를 넘어 멀리 날아왔다.
사네미는 코앞에서 바닥으로 멋지게 추락하는 부케를 휙 낚아챘다. 짧은 소요가 있었지만 식은 무사히 진행되었다.
“부케 받고 반 년 안에 결혼 안 하면 혼기 놓친다던데.”
“뭐야, 그게.”
겐야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곧 우물쭈물거리던 그가 조용히 물었다.
“…형은, 정말로 나 같은 걸로도 괜찮아?”
그리고 사네미는 대답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리고 재회한 뒤 깨닫지 못한 동안에도 줄곧 해주고 싶었던 말을.
“네가 아니면 안 돼.”

















































